0x68. 사진 빛의 세기를 열다.
나의 블로그에서 처음 리뷰를 해보는 사진집이다. 이제껏 9권의 사진책을 리뷰를 했는데 모두가 글 위주의 책이거나, 명상집처럼 반반인경우였다. 하지만, 이 책은 이전과는 다르다. 글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정도로 그치고, 대부분이 사진이다. 그래서 "도록"이라고 그런다. 무려, 2만원의 거금을 들여서 두번의 망설임 끝에 20세기 사진 거장전에서 구매를 하게 되었다. 이전 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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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번에는 이전에 내가 언급했던 사진을 가지고 리뷰를 쓸까한다. 이상하게도, 글이 별로 없고 그림이 많은데... 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이 책이 더 오래 걸린다. 글은 편안히 읽거나 이해가 가지 않으면 다시 읽으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사진집의 사진들 중에는 그 설명이 없다면 정말 이해하는데 오래걸리거나, 혹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은 상태로 책장을 덮곤한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마추어 초보라는 나름의 자기 변명(?)을 통해서 편안히 읽고, 감상하고, 이처럼 글을 쓴다. 하하하.
큐레이터는 아니지만, 나름의 사진에 대한 느낌을 적어 보고자하고, 일부는 인용했을수도 있고, 일부는 내 맘대로의 생각일 수도 있다. 취사 선택은 본인이 하시면 되겠다. 이들을 모두 아방가르드라고 그런다. 아방가르드는 전위예술로써 전위는 군대용어로, 전투할때 선두에 서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의 뜻이다(네이버 참고). 이 중에서 전위예술은 20세기 초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자연주의와 의고전주의에 대항하여 등장한 예술운동을 일컫는다. 이는 이전의 과학이 가져다준 편리함과 대량생산이 1차세계 대전에서 죽음의 저승사자로써 다가오자. 이전 것을 타파하려는 다다이즘을 이끌어냈다. 아래의 사진들은 이런 아방가르드의 사진들이다. 자! 작품을 이해할때는 그 시대를 아는것이 중요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한세기전으로 가보자!!
자! 그러면 순서대로 짚어보자. 섹션 1의 주제는 "주인공은 누구인가?" 이다.
위 그림은 현창 속의 초상 이라는 드니즈 콜롱의 작품이다. 날짜를 보니 반세기가 지났다. 자! 현창은 무엇을 말할까? 현창은 뱃머리에 통풍이나 채광을 위해서 뚫어놓은 창문을 뜻한다. 그렇다면, 위 사진의 주인공은 일하는 노동자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왜 유명한 것일까? 이 시대의 인물 사진은 대부분 증명사진과 같은 사진이였지만, 드니즈 콜롱은 그렇게 찍지 않았다. 검은 피부의 노동자와 현창의 그림자가 어울러져서 사진의 주제가 노동자인지, 현창인지 고민스럽게 만든다. 그럼 누가 주인공인가? 기존의 인물사진이라는 생각을 뒤집었다.
위 사진은 앙드레 케르테츠가 1929년에 유리 원판에 사진을 찍은 것이였다. 이때는 온전한 사진으로써 파리를 담은 사진이였다. 하지만 이것이 1960년대에 깨지게 된다. 이때, 우리는 이제까지 믿어왔던 사진속 파리가 현실이 아님을 알게된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을 말한다. 주인공은 누구인가? 파리인가? 아니면 파리라는 생각을 가졌던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저 구멍일까? 마치 매트릭스처럼 말이다.
위 사진은 실제로 보면 굉장히 편안하다. 이 책의 편집자에게 사실 화가난다. 왜 저렇게 두쪽에 나누어서 인쇄를 해버려서 사진을 감상할수도 또 잘라서 액자에 넣어 놓을 수도 없다. 정말로 화가나는 부분이 아닐수 없다. 암튼! 이 사진은 마치 쌍둥이인듯한 두명의 아이가 노르웨이 전통 분양의 옷과 모자를 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에 마치 복제한 듯한 두마리의 갈매기가 날아가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물을 보았을 때, 대칭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마치 위의 사진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사진이 좋은 형태를 찾아서라는 두번째 주제속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 편안한 사진이다. 고요한 호수처럼...
세번째 주제에 있는 "높은 곳에서 굽어보라"라는 주제 속에 있는 게르테츠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행인의 머리 꼭대기에서 촬영을 하였다. 이 당시는 고층빌딩이 없어서 사람들이 높은곳에서 현기증을 일으키곤 했었다고 그런다. 그래서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그런 환경이 익숙해지라고 일부러 높은 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의 현기증을 극복하라고 말이다. 이중, 이 사진은 게르테츠가 높은 곳에서 행인을 찍었기에 행인은 비현실적으로 압축이 되어 버렸다. 반면, 그림자는 아주 현실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어느사이에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끝이 아니다. 실제로 이 사진은 이런 모습으로 전시 되어 있었는데.. 큐레이터 분이 전시를 관람하는 손님중에 한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고 한다. "저 사진이 아래위가 있느냐?"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닭살이 돋았다. 바로 생각을 해보니 정말로 저 사진은 아래위가 없는 사진이다. 오히려 거꾸로 걸어 놓으면, 게르테츠가 의도하였던 바를 더욱더 부각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아래 사진처럼 말이다.
어떤가? 놀랍지 않은가? 단지 시점만 바뀌었을 뿐인데... 정말로 케르테츠가 말하고자 했던 그림자가 극단적으로 현실화가 되었고, 그 주체는 아주 압축이 되어버렸다. 닭살 돋을만 하지 않은가?
위 사진은 어떻게 보면 그냥 계단과 꽃볓을 촬영한 사진이다. 그런데 왜 좋은 사진인가? 일반적으로 밝은 부분은 가까이에 있다. 어두운 부분은 멀리 있듯이 말이다. 반면, 이 사진에서는 이것이 거꾸로 되었다. 어두운 부분이 가까이 있고, 밝은 부분인 계단은 오히려 멀리 있다. 이것이 일차적으로 반항(?)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꽃병은 어두운 곳에서 대조적으로 밝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꽃병의 꽃은 생화가 아니다. 사진에는 통념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조화를 꽃병에 둠으로 인해서 거짓이라는 것을 조롱하고 있다. 무엇이 사실인가?
위 사진은 정말.. 무어랄까? 스냅사진이라고 해야할까? 사진에 담긴 과일 장수들은 각자 제할일을 하고 있고, 그 뒤로 행복에 겨운 연인이 걸어가고 있다. 이 사진을 처음보면 아마 시각이 연인에서 출발해서 앞의 담배를 물고 있는 과일 아저씨 그리고 그 뒤의 과일 아저씨와 더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볼것이다. 혹은 완전히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이런 시선의 움직임을 가져오는 절묘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이것이 다섯번째 주제인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이다. 저 연인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연인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 사진에서는 순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나에게는 반전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었다. 처음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신문지로 그림을 싸서 소중하게 들고 있는 중년신사가 처음에 눈에 들어온다. 필히, 그림일듯 싶다. 저 그림은 정적인 것의 의미로 다가왔다. 반면, 이 사진을 찍은 순간 다리위에서는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바로 동적인 순간이다. 이것이 둘이 상반된다. 하지만, 한가지 더! 사진에 담겨있는 그림에게 카메라가 따라 올테면 따라와봐라는 자신만만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사진이 좋게 느껴진다.
이 사진은 처음 보았을 때는, 그냥 쓰윽하고 내 눈위로 지나가버린 사진이였다. 하지만, 큐레이터 분의 설명을 듣고서.. 아! 내가 큰것을 놓쳤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그 이후로 더 좋아지게된 사진이다. 사진이 전체적으로 어둡다. 하지만, 건물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이 있는 부분은 밝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단 한발자국만이라도 늦었으면 찍지 못했을 사람들이 모두가 그 빛속에 담겨져있다. 모두가 무대에서 조명을 받는 주인공처럼 말이다. 이 사진은 바로 평범한 우리가 주인공이라고 말해준다. 정말 좋은 뜻이지 않은가?
사진 작가들은 굳이 포스팅을 하지 않겠다. 그러 부분은 위키피디아나, 놀, 다음, 네이버 등등에서 찾으면 금방 찾는다. 이 포스팅은 사진가 대신에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내가 쓴것에 공감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 글은 댓글로 달아주면 좋겠다. 사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눈은 더 넓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