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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22 0xC3.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2. 2010/08/20 0xC2.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공지영)
  3. 2010/08/13 0xC1.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4. 2010/07/04 0xBF. 서두르다 잃어버린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고든 리빙스턴) (2)
  5. 2010/06/12 0xB8. 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8)
  6. 2010/06/09 0xB6.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4)
  7. 2010/06/07 0xB4.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2)
  8. 2010/06/04 0xB3. 파라다이스 2 (베르나르 베르베르)
  9. 2010/05/23 0xAF.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8)
  10. 2010/05/20 0xAE. 화가 vs 화가 (허나영)

0xC3.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0xC3.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이 책을 읽다가 두번이나 책을 손에서 놓았답니다. 그다지 철문같은 제 마음의 문을 두드려 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읽을 때 이 책은 포스팅을 안하게 될 줄 알았어요. 반쯤 읽었을 때, 줄거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구요. 좀더 읽으니 책 이야기가 공지영씨 이야기를 소설로 펴낸것 같더라구요. 책은 '즐거운 나의 집'이란 제목으로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며 책 뒷편에 적혀있었지만, 저는 이 책을 다 읽고 마지막장을 덮을때 뒤에 이렇게 썼답니다. "행복, 그것은 삶의 소소한 웃음을 통해 시동이 걸린다." 뭐, 이런 좀 상투적이고 진부한 표현? 하하하. 

  세명의 성이 다른 아이를 낳은 글쓰는 작가의 삶의 모습을 그린 장편 소설이라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픽션 에세이라고 정의를 내릴까요? 주변의 구성과 이야기는 마치 공작가의 삶을 소설이라는 공간으로 옮겨놓은 듯한 이야기이거든요.


  "실은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심판이 아니라, 때로는 정의보다는 사랑이고 이해라는 것은 물론 더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알게되었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투정부리기 쉽고, 화내기 쉽고, 함부로 하기 쉬운것 같아요. 언제나 항상 그 모든 것을 받아주는 부모님 처럼요. 그래서, 항상 내가 옳다고 억지를 부려도 부모님은 그냥 받아주세요. 왜 그럴까요? 어쩌면,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살으셨던 삶을 통해서 벌써 현명한 재판관이 된것일지도 몰라요.


  위에 부분을 읽다가 한참 웃었답니다. 소설에 나오는 엄마가 정말 다정하게 느껴졌어요. 막내 제제가 학교에 안가고 PC방으로 향했을때, 화내기 보다는 가기 싫으면 하루쯤 쉬라고 하라고, 쿨~ 하다고 생각하지만, 뒤에 표현이 더 재미있어요. 대신, 엄마가 경찰서 갈 거라고요. 왜냐고요? 학교는 의무교육인데 그것을 위반했으니까 엄마가 경찰서 가야한데요. 하하하. 이렇게 해서 막내 제제를 설득하려고해요. 정말!! 기발하게 현명하지 않나요? 


  가끔씩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한말에 충격을 받는다고 그래요. 특히, 무심결에 했던말을 아이가 기억하고서는 그것을 말할때는 특히 그러지요. 그래서 '애 앞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그래요. 위에 나오는 부분이 그 부분이랍니다. 초등학생인 제제가 했던 말인 "사는게 참 맘대로 안 돼"라는 말에 덧붙여서 "맞아... 그렇다고 그게 꼭 나쁜 것도 아니야."라는 대목은 정말 저절로 얼굴에 웃음을 짓게 했어요. 어디서 보았던 글처럼, 초등학생이 아빠에게 "아빠, 힘들지? 인생이 다 그래." 라는 글귀가 머릿속에서 맴돌더군요. 하하하.


  부모님의 욕심은 자신보다 자녀가 더 낳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 한결 같은 부모의 욕심이겠지요? 하지만, 그 자녀들은 부모의 마음조차 따라가기 버겁답니다. 너무나도 받은게 많거든요. 그래서 부모님 만큼만이라도 되고 싶어하죠. 부모가 되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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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xC2.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공지영)



  0xC2.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공지영)

  책의 제목이 주는 의미는 이따끔씩 많은 것을 생각하게해요. 깃털 자체만으로도 가벼운데, '아주', 그리고 '가벼운' 그것도 '하나'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책은 어쩌면 정말 무거울 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거든요. 저자 공지영씨 책을 소개하기는 이 책이 다섯권째군요. 사실, 다음번에 포스팅 될 책도 공지영씨 책이랍니다. 두 책 모두 지난번에 포스팅했던 '사막의 꽃'을 빌려준 미정씨에게 빌린 책입니다. 한꺼번에 세권을 빌렸지요. 암튼, 블로그에서 소개한 이전의 공지영씨 책은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괜찮다, 다 괜찮다>, <도가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입니다.

  사실, 제 경우는 한 책이 좋아서 그 사람 책을 찾아서 읽지는 않는 편인데, 빌려준 미정씨는 관심있는 작가 책은 대부분 읽는다고 그러더라구요. 뭐, 저는 좋은 책이거나 인연이 있으면 또 내손에 들리는 날이 있겠지 하는 편이거든요. 아마도 그래서 이번처럼 공지영씨 책이 손에 들어왔나 봐요. 얼마전에 예외가 있었다면 호시노 미치오의 책들이 아마도 그 예외에 속하겠네요. 구입할때 한꺼번에 모두 구입해버려서 하하하. (그중에 한권은 읽기가 아까워서 남겨두고 있담니다. '노던라이츠')

  자! 책 이야기로 들어가볼께요.


  책의 저자 공지영씨에 대한 소개는 이전에 포스팅한 <무뿔소>에서 했으니, 생략할께요. 추가적으로는, 제가 생각하는 공지영씨 책에는 3이라는 숫자가 자꾸 눈에 들어와요. 세번의 결혼, 세명의 성이 다른 아이, 세여자 등과 같은 3이라는 숫자요. 어쩌면 가장 균형을 이룰수 있는 숫자가 3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답니다. 트라이앵글처럼 균형잡히고 서로 대립구조를 만들어서 풀리는 이야기는 균형이 있거든요. 그래서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장을 덮을때는, 내가 살짝 그 균형을 눌러주어서 이야기를 정리해버리는 재미가 있는것 같아요.


  책의 제목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는 어쩌면 책에서 다루는 무거운 삶을 다르게 보자는 뜻이 아닐까 싶어요. 삶에서 받는 상처들 하나 하나가 그저 가벼운 깃털 하나라고 말해주는것 처럼요. 그래서 그런 상처 마져도 살아 있다는 징표로 치부해버리는 대담함이 묻어 있는것 같거든요.


  위의 부분은 초등학생정도인 막내 제제가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친구에게 줄려고 목걸이를 용돈 가불해서 샀던 이야기의 끝부분이예요. 너무 귀엽죠? 좋아하는 사람 아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아끼는 마음이요. 물론,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사랑해서 떠나 보낸다'와 비슷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읽으면서 입이 앞으로 쭉 튀어나와서 누나에게 대꾸하는 제제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거든요. 작은 아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그 작은 아이의 가슴속의 마음은 어쩌면 가장 큰 마음일 수도 있거든요.


  삶은 보이는 만큼 알게되고,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더라구요. 사실, 앞에 '삶은' 이라는 부분은 제가 붙인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 인것 같아요. 보이는 만큼 알게되고, 아는 만큼 사랑해야하는데, 보이지도 않는 것을 알려고 하면서 걱정하고, 걱정하는 만큼 불안해져서 사랑하지 않게되는 것요. 그러다가 보면 불행이 찾아오더라구요.


  책을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블로그에 쓸려고 다시 뒤적거리다가 보니, 맨 앞장에 이런 글귀가 있더군요. 아마도, 미정씨가 사인회에서 받은것 같은데 덕분에 공작가님 글씨체도 보게되었네요. 신나고 좋은일! 나와 남에게 그래서 우리모두에게! 하루에 하나씩 정도? 음.. 무슨 좋은세상 만들기 운동본부 구호같지만!! 공작가님의 책을 통해서 원했던 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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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xC1.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0xC1.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 캐틀린 밀러, 이다희 옮김)

  이 책은 지난번 유럽여행을 가기전에 미정씨에게 빌린 책이다. 공지영씨 책과 같이 빌렸고, 내 책도 몇권 빌려줬다. 일명, 책 바꿔보기랄까? 공지영씨 책은 내가 보고 싶다고 해서 받았고, 이 책은 미정씨가 추천해준 책이다. 제목은 "사막의 꽃"이고 꽃은 바로 책의 저자 와리스 디리 자신이 살던 소말리아 사막의 유목민의 이야기와 자신의 에세이가 전반부에 담겨있다. 하지만, 가볍게 한 개인의 삶을 다루지는 않았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책의 저자 와리스 디리는 소말리아의 한 유목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5살때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할례를 받았고, 그 고통과 공포를 이겨냈지만 헝겁처럼 절단되고 꼬매어진 그녀의 성기는 어른이 되어서 수술을 할때까지 끊임없이 그녀에게 고통을 주었다. 열댓살때 한 노인에게 낙타 5마리에 팔려가기 전에 그녀는 집에서 도망을쳐서, 그녀의 친척이 살고 있는 소말리아 최대항구 도시이자 수도인 모가디슈로 홀로 떠난다. 

  거기서 친척들 집을 옮겨다니며 일을 하다가, 런던의 가정부로 떠나게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4년간 시계바늘처럼 정확한 가정부 생활을 견디었고, 대사관의 친척들이 소말리아로 돌아가지만 그녀는 남기로 결정한다. YMCA에서 숙식을하며 맥도날드에서 일을하다가 몇년째 따라다니던 한 사진작가에 비로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게된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모델로써 활동을 하기 시작하고, 이윽고 세계적인 모델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신이 받았던 끔찍한 고통인 할례에 대해 서방세계에 알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UN의 운동가로써 FGM(Female Genital Mutilation : 여성의 성기 훼손, 할례) 철폐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타국인 런던에서 홀로 살아남는 방법은 방법은 바로 생존 법칙을 배우는 것이였다. 여권을 위해서 술주정뱅이 노인과 위장 결혼을 했으나, 이내 이민국에 적발되었고 그녀는 또 다시 자신의 친구의 오빠와 위장결혼을 했으나, 그녀의 친구는 정신병원에 갇혔고, 위장결혼한 남자는 점점 와리스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는 끊임없이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생존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된다. 하지만, 그녀는 굴복하지 않는다.


  자연을 사랑하고, 사막의 바람을 사랑했던 그녀는 자신의 BBC와의 다큐멘터리를 계기로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10년동안 헤어졌어야만 했던 자신의 어머니와 다시 만나게된다.



  살아 남아야했던, 그녀의 강인함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고, 그녀의 의지가 더욱더 굳건하게 했을 것이다. 옮긴이 이다희씨의 말에 이런 부분이 있다. "와리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관습이라는 수레바퀴 아래 나동그라져 딸자식에게 '정신적 할례'의 칼을 들이대고 있지는 않는지, 때로는 학교 교사가, 직장 상사가 그 역활을 맡고 있지는 않는지. 그래서 우리 중에는 죽을 때까지 '정신적 불구자'로 살아가는 여성이 있지는 않은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와리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책의 저자와 옮긴이, 그리고 추천해준 이가 모두 여성이여서 더욱더 공감 갈 수도 있다. 여행을 갔을때 타국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해주어야 하는것이 그곳의 룰이다. 하지만, 그 문화와 전통이 인류를 풍요롭게 하고 또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있을때의 이야기이다. 이 경우에는 전혀 아니다. 이 책 이전에도 다큐멘터리와 TV를 통해서도 할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일 뿐이였다. 피해자 당사자의 본인의 목소리는 아니였다. 이 책은 그 점이 다르고, 그 고통이 얼마만큼이며, 숫처녀를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는, 여성을 물건으로 바라보는 명백히 미친 짓이 인간에게 어떤 고통을 가져다가 주는지를 똑똑히 밝힌 책이다. 정말 이런건 미친짓이다. 할례, 중국의 전족 이 모든 것이 하루 빨리 사라져야할 일들이다. 

  그릇된 관습의 굴레가 여성들에게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제야 조금씩 그 굴레가 깨어지고 있지만, 안으로 갈수록 단단하기만 하다. 하지만, 반듯이 깨어야한다. 단단한 알을 깨고 나왔을때, 창공을 가로 지르는 독수리의 꿈을 꿀 수가 있다. 그 꿈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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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xBF. 서두르다 잃어버린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고든 리빙스턴)



  0xBF. 서두르다 잃어버린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고든 리빙스턴 | 공경희 옮김)

  이 책은 위드 블로그(이하 위블)의 서평단으로 작성하는 마흔 일곱번째 책이다. 원제는 "How to Love"로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상담가인 고든 리빙스턴이 30여년간 사람들의 고민의 상처와 치유, 희로애락을 담아낸 책이다. 사실, 그는 어쩌면 정신과 의사로써, 심리상담가로써, 실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혹은 너무나 한곳만을 바라보다가 주변을 못 본 사람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들은 자살을 했다.

  비슷한 책들로 동일 저자가 쓴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1, 2권"이 있다. 이 책들 모두가 좋은 평을 듣고 있고, 심리상담가가 쓴 정신분석에 가깝지만 전문용어는 나오지 않아,  무난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책은 아래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책이 다루는 주제가 바로 "사랑"이다. 번역상의 표현인지 아니면, 직접적으로 언급한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에서는 사랑을 공부하라고 그런다. 하지만 여러번 반복되어서 나오고 주변의 글흐름으로 보아서도 후자가 맞다고 생각한다. 즉, 이 책은 사랑을 공부하는(?) 책이다.


  한순간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된다면, 인생의 한 순간만 행복하다. 음. 너무 축약했나?


  위의 글귀를 트윗에 올렸는데, 리트윗하시는 분이 뒤엣 말이 슬프단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읽었다. "사랑은 시간을 잊게 하고, 시간은 사랑의 슬픔을 잊게 한다." 슬픈 글귀도 한번 더 보면 다르게 보이듯이, 슬픔도 한번 더 보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맹세도 말도 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심(眞心)이 만드는 행동(行動)이 중요하다. 가식(加飾)적 행동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끝으로 책을 번역한 공경희씨의 글을 보고, 책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볼까 한다.


  책의 저자는 30여년간 심리상담사로 일했고,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축해서 책에 담아 놓았다. 그래서인지, 그가 만났던 30년간의 심리적 아픔이 있는 이들의 이야기 진액(津液)만 남아 있다. 간단한 표현으로,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것 같다는 말이다. 아마도, 사랑에 빠져 너무 행복한 사람들은 심리상담가에서 상담을 받이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담지 못했나 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는 완벽한 결혼 상대를 찾으라고 애쓰라고 하며, 시간에 쫓기어 서두르지 말라고 한다. 한문장으로 줄이면, 사랑은 짧고 세월은 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결혼하는데는 두 사람이 노력해야하고, 이혼하는데는 한 사람만으로도 족하다. 그러니 후자의 결과 보다는 전자의 과정을 더 지켜봐주고 응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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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xB8. 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0xB8. 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김인순 옮김)

  우리 나라에서 쉽게 언급하기 어려운 단어가 바로 자살이라는 단어이다. 통계청에 들어가보니 2008년도 자료까지 있는데 12,858명이다. 천이백명이 아니라 만이천명이다. 이 말은 1년내내 한시간 반마다 한명씩 자살을 했다는 말이다. 2008년 전체 사망자수가 246,113명인데 전체 사망자중 자살하는 사람이 5%나 된다. 게다가 2003년 이후로 자살률은 OECD 5년 연속 1위이다. 2008년 타살이 684명에 비해 자살은 그보다 200배 많은 수이다. (통계청 링크 :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ActiveX가 되어야 사용가능함. 된장 IT강국)


  하지만, 이런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가 보다. 핀란드도 마찮가지인가 보다. 물론, 인구수가 2005년도 기준으로 5백만명이니 단순한 산술적 계산으로 10배가 우리나라 정도가 될것이다. 암튼, 이런 수치적 이야기는 머리가 아파오니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책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이 책은 약 7달 전에 회사 지인의 블로그에서 책의 제목을 보았고, 제목에 흥미가 끌려서 구글링을 해보니 의외로 괜찮은 소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 읽으면 빌려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sweety님이 지난주에 메신져로 드디어 다 읽었다고 알려주었다. 푸하하하. 난 정말 아직도 기억하고 계실줄은 몰랐다. 내가 블로그에 가끔씩 놀러가니 포스팅한것을 보고 빌려달라고 졸랐을 법한데, 그전에 챙겨주시니 감동~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은 전체적으로 컬트 무비를 보는 느낌이다. 줄거리를 잠깐 언급하면, 한 마구간에서 자살하려고 했던 두 남자(렐로넨, 켐파이넨 대령)가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집단자살을 할려고 신문 부고란에 광고를 낸다. 그리고 그 답장으로 온 편지들을 읽으면서 자살 세미나(?)를 개최한다. 주제는 엉뚱하게도 숭고한 자살에 대한 방법이다. 또한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들로 부터 모금을 해서 엄청난 돈을 기부 받는다. "요즘은 죽어서도 장례식 치를려면 돈이 필요하니, 장례비용으로 기부하는 부자들이 있었다." 

  암튼, 그 중에 열성적인 스무명의 사람들에 의해서 대령이 리더로 추앙받고 이들과 함께 대령은 등에 떠밀려 자살여행을 떠나게된다. 최고급 2층짜리 모터홈을 가지고 절벽으로 질주를 하여 자살하려고 시도 했으나 몇몇이 비상벨을 눌려서 버스는 절벽에서 핸들을 돌려 간신히 멈추고, 이들은 더 멋진 절벽이 있는 세인트 빈센트 곶으로 향한다. 말인즉, 핀란드->스웨덴->독일->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로 여행을 해서 한때는 지구의 끝으로 알았고 지금은 유럽의 끝으로 알려진 세인트 벤센트 곶으로 향한다. 암튼, 이 곳으로 여행하는 동안 함께 여행했던 자살자들 사이에는 서로의 처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 중 몇몇은 커플로 발전해서 삶의 끈을 다시 잡게된다. 이들을 이끌었던 대령도 마찮가지로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

  이 책의 저자는 블랙 코메디 대가라고도 이야기 되는데, 책을 읽으면 그런 부분이 곳곳에 서려있다. 자살 여행을 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과 호텔에서 훌리건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루게 되고, 멍든 몰골로 자살하면 흉찍하기 때문에 피멍이 가라 앉을때까지 계획을 연기하기도 하고, 프랑스를 넘어갈 때는 여권이 없어서 여권이 나올때까지 기다리기도 하는등의 엉뚱하고 우수깡스러운 설정들이 썩소를 자아내게 한다. 게다가 최종 계획을 실행할 때에는 모두 버스에서 내려서 세인트 빈센트 곶의 절벽과 등대,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데, 자살자중 한명이 2시간에 걸쳐 홀로 매뉴얼을 보고서는 버스를 몰아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 쳐버려서 모두들 '멍'때리는 풍경을 자아내기도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책의 끝부분에 나타난다. 위의 책 내용을 한번 읽어보면, 이건 뭐 핀란드 이야기인지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이야기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런 현실을 탈출하려고 선택한 자살이지만 여행을 통해서 사람들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부닥치는 문제가 정말 작고 별게 아닌 문제라는 것을 차쯤 깨닫게된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좀 엉뚱하여서 자살을 무겁게 표현하지 않았다. 정말 사소한 문제(?)들이 자살을 실행하려는 계획을 막는 장면에서는 어떻게 보면 정말 사소한 것 때문에 자살을 하려고 하는 이들을 역설적으로 풍자한것 같다. 파산을 해서, 아내가 도망을가서, 그냥 사는게 우울해서, 자기 과대망상에 사로 잡혀서 자신의 문제는 크게 생각하고 타인의 문제는 점점 작게 생각하는 현대인들을 이리저리 비틀어 풍자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아쉬운점은 소설에 나오는 지명이 생소한 곳이라 어떤 풍경이고 유럽의 어디쯤인 전혀 감이 오지 않아서 책속으로 깊게 잠수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이름은 왜 그렇게 어려운지. 사실, 한국 사람이름 구별도 나에게는 어려운편인데 말이다.

  끝으로, 아직 포스팅은 안했지만 바로 전에 읽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과 이 책이 나에게는 우연하게 잘 대조가 되었다. 하나는 자살을 하려는 이들을 묘사했고, 또 다른 하나는 살고 싶지만 그럴수 없는 이들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마치, 이 책속에서 자살하려고 우연하게 만났던 두 남자 렐로넨과 켐파이넨 대령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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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xB6.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0xB6.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이미 오래전 베스트셀러였던 책인데, 이제서야 읽었다. 오랫동안 묵혀서일까? 글맛이 숙성이 잘 되어 나를 취하게 한다. 이 책은 93년도에 써졌고, 난 2010년에 읽었다. 하지만, 17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것 같다. 적어도, 삶에서는 말이다.

  실제로 공지영씨는 세번의 결혼을 했고, 세명의 성이 다른 자녀를 두었다. 그래서 그녀가 한때는 가족사를 팔아서 글쓰는 것이 아니냐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반면, 그런점 때문에 그녀는 인생파 소설가이다. 그래서 그녀의 책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무리 보수단체가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해도 독자들은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그렇게 때문에 공지영 작가는 세상에 당당하다. 공지영 작가에게 왜 소설을 쓰냐라고 질문했던 것을 본적이 있다. 그녀는 당당히 "돈 벌려고 글쓴다."라고 말했다. 돈 많이 벌어서 사람들에게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것을 보고 고등학생들이 또 대학생들이 글을 쓰려고 하고, 책을 읽고, 또 생각을 하게되면 그것이 대한민국의 문학을 발전 시키는 것이 아니냐라고 오히려 되물었다. 

  그런 당당함 때문에, 난 그녀의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내 블로그에서 소개하는 4번째 공지영 작가의 책이기도 하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괜찮다, 다 괜찮다>, <도가니> 공지영 작가가 이런 책들을 통해서 보듬어주고 싶은 부분은, 이유 없이 차별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의 편에 섰다. 어쩌면 그녀가 펜을 잡기도 전부터 말이다.


  책에서는 세명의 여자가 나온다. 외도를 알고도서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자 함께 사는 경혜, 결혼 후에 애를 낳고 일을 하러 떠나는 출근길에서 뜻하지 않게 아이의 목숨을 잃어버렸고 또 그래서 이혼한 혜완,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남자를 위해서 뒷바라지 하다가 결국은 성공한 남편으로 부터 멸시당해 지나간 과거속에 묻혀살다 자살을 선택한 영선. 이 세명의 여자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후반부에서는 소설에 등장한 세명의 여자 모두가 공지영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우연찮게 그녀의 결혼 생활도 세번이였다.

  세명의 여자가 결혼했던 남자들이 현대의 남성상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또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한번쯤은 이 소설속의 가면을 써보았을 법 하다고는 생각한다. 남자로써의 변명일까? 암튼, 그 가면들 중에 일부분은 작가의 옛 남편일수도 있다.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내가 완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말 할 수 없다. 아마도, 단언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것중에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은 한다. 그래서 난 가끔 "성차별은 안해도, 성구별은 한다."는 표현을 즐겨 쓴다. 혹자는, 그 소리가 남자한테는 관심없고, 여자한테만 관심있다는 소리로 들린다고도 한다. 물론, 나로써는 맞는 말이다. 하하하.


  이야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빠졌는데, 어쩌면 여성 작가로써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여성으로서 사회에 살아가는 것에대해 생각해보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마디로 이 책이 그녀와 닮아있다. 

  나의 생각은, 책에서처럼 애 낳기 위해서 결혼을 선택한다면 하지 말라다.결혼해서 애를 낳고서는 자신의 삶을 희생시킨 대가를 아이에게서 보상 받으려 한다면, 애를 낳지 말자는 생각이다. 차라리, 말은 쉬울지 몰라도 "삶을 희생하지 말고 스스로 지켜라".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한다고 그런다.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만들어 놓은 제도 이기 때문에 복구(?)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인 애는 그렇게 마음대로 하지를 못한다. 그러니, 신중에 신중을 해야한다. 그리고 그 순리에는 그 어떤 이유나 보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종종 그것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 순리 속에서 성별을 구분하기 시작하고 보상을 찾기 시작하고 그것이 반복된다. 

 책에 이런 부분이 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딸들에게는 어머니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라 하고 가르치고, 아들에게는 어머니 같은 여자를 얻어라 하고 가르쳤다고, 우리 세대는 그런 딸들과 그런 아들들이 만나 끝없이 갈등하는 세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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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xB4.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0xB4.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그림 한장을 보면서,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 에세이여서 이 책의 제목은 "그림에, 마음을 놓다."라고 붙였나 보다. 그림 책 임에도 불구하고, 책 저자의 따뜻함 때문인지 그림 보다는 글에 더 정신을 쏟았던 것 같다. 어쩌면 책의 저자 이주은씨가 말하고자 했던것은 "너 힘든거 알아! 하지만, 생각을 바꿔봐 이렇게!!"라고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림 이야기를, 마치 잠자리에 들때 침대 옆에서 이야기 해주듯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런 책이다. 


  그림에서 거울이 의미하는 바는 여러가지이다. 자신의 모습에 빠진 "허영"을 나타낼 때도, 혹은 누군가에게 푹 빠져버린 "사랑"을 나타낼 때도 있다. 타인의 눈, 타인의 촉감, 낯선 이것들을 막고 통제하려 애쓸수록 굴레가 된다는 지은이의 말이 거울의 또다른 의미를 가져온다. 사랑하는 커플들은 서로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고 그런다. 그 대목을 읽었을 때, 나는 또 다른 거울이 떠 올랐다. 어둠 속에서 무심코 거울을 보았을 때, 놀라는 긴장감과 떨림. 그건 어쩌면 나와 닮은 또 다른 나를 보는 느낌 때문이지 않을까?


  위는 1837년 에드윈 랜드시어 [늙은 양치기 상주]의 작품이다. "개는 후회하지 않는다.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소통할 줄 아는 현명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은 준 것 만큼 되돌려 받지 않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한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만큼은 개처럼 해야한다. 사랑하라. 개처럼 솔직하고 단순하게 -p.077" 

  언제가 한번 블로그에 "불안과 소비"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려고 한다. 알랭 드 보통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인데 이 끝부분은 아마도 이렇게 끝을 맺을듯하다. 소비를 통한 소유에 익숙해진 우리는 사랑을 통해 서로를 소유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애썼던 모든 것을 돌려 받지 못할까봐 망설이기만 한다. 아마도, 나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개가 나보다 낳은듯 하다.


  "혼자 있을 땐 자신과 풍부한 대화를 하지만, 외로울 땐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한다. [중략] 이별 후에는 외로움의 시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시기를 앓고 나면 혼자가 되는 즐거움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무엇을 상실한 반쪽이 아닌 온전한 하나가 되어야만 다른 하나를 만나 또다시 반쪽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100,103"

  뒤늦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르키소스는 슬픈 결말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지닐것 같다.


  "유한하다는 이유만으로 생이 헛되다고 할 수는 없다. 허무함이라는 단어는 꽃처럼 찬란해본 적이 있는 생에 대해서만 쓸 수 있다. 단 한 번도 피워보지 못한 생을 살았던 이가 삶이 허무하다 말할 수는 없다. -p.192"

  안도현 시인의 싯구가 생각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오히려 다행이다. 내 삶은 아직 허무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 난 아직 연탄재가 아니니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오히려 행복한걸까?


  [사모트라케의 니케] 기원전 200~190년경. 승리의 여신상 옷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는듯한 착각을 주는 이 조각상을 지은이는 루부르에서 피곤에 지쳐 쉴려고 앉았다가 우연히 바라보게 된 곳에서 찾았다. 그녀가 말하는 행복은 이런 우연함이다. "행복은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색깔이 달라지는 카멜레온이다. -p.201" 그녀가 느꼈던 행복은 어떤 것이였을까? 여행책들과 TV프로들을 보면서 내가 알아가고 있는 것은, 작은 것에 대한 느낌이고 어쩌면 그것을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까지 너무 큰 것만 바래왔다. 한꺼번에 모든것을 바꿀려고만 했다. 그래서 그것을 쫓아 다닐려고 했고, 그것이 행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내가 들고 있는 손거울 속에 비친 조금씩 나를, 당당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작은 것에서부터 지금 행복해야, 행복한 미래를 만날 수 있다. 그럼 까르페디엠? ㅡ,.ㅡ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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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xB3. 파라다이스 2 (베르나르 베르베르)



  0xB3. 파라다이스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이 책은 대략 2주일전에 읽은것 같다. 그동안 주인장이 돌아다니느라고, 이제서야 포스팅한다. 이 책은 2권이며, 1권은 예전에 포스팅했었다.(링크) 1권과 2권을 통해서 느낀것은 베르나르가 자본주의에 살짝 염세적인 색깔을 띄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인 즉, 2권에서는 인간의 선택과 소비, 행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 놓았다. 요즘에는 책을 두세권정도를 한꺼번에 본다. 이를테면, 가지고 다니기 귀찮아져서, 집에서 보는책, 회사에서 보는책, 주말에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책, 등. 이렇게 여러권을 메뚜기 뛰어다니듯이 읽다가 보니 살짝 이 책이 옴니버스영화 처럼 여러가지 단편의 이야기들을 묶어 놓았다는 것을 잊었었다. 말인 즉, 어쩌면 옴니버스라도 이제는 좋아 할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권에는 9가지 에피소드가 엮겨있는 형식이지만, 1권에서 처럼 각각을 소개하기 보다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하는 에피소드를 소개할까 한다. 사실, 읽은지 오래되어서 다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푸하하하.


  "침묵은 음악을 사랑하게 하고, 어둠은 색깔을 사랑할 줄 알게 한다. - p.105 농담이 태어나는 곳" 좀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강력한 대조를 사용하여 그 뜻을 한번에 느끼게 하는 구절이였다. 무지개를 원하면 비가 오는 곳으로 가야한다!!


  "오직 당신만의,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은 진정한 개성, ..[중략].. 당신은 눈먼 양 떼 중 한마리 양이 아니란 말입니다! -p.207 당신 마음에 들 겁니다." 나는 이 구절이 회사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창의성, 아이디어, 혁신, 열정등을 외치면서 천명이면 천명, 만명이면 만명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게끔 교육을 시킨다.  말인즉, 천명이 한가지 생각을 하게끔 만들려는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는 것이다. 

  비록 이 책에서는 음식점에서 부부가 자신들이 먹고 싶은 것을, 그냥 웨이터가 추천하는 것으로 선택하는 부부에 대한 장면에서 위에 내용이다. 그리고 올리비에 로뱅(주인공)은 그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라고 설파하지만, 자신의 선택을 포기한 것도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부부의 말이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로뱅의 선택은 어떠했을까? 에피소드 끝부분에 이런 로뱅의 말이 있다. "여러분의 자유를 활용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자유를 잃게 될 것입니다." 맞습니다. 생각한데로 행동하려고 하지 않으면, 행동하는 데로 생각하는 법입니다. 자유의 지를 가져야 합니다!!


  위는 베르나르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예가 될 수 있다. 물론, 1권 "영화의 거장"에서 자본주의의 불안함을 이야기 했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바로 <소비>라는 주제이다. 사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권의 내용보다 "파리를 떠난 마카룽"의 내용이 더 적절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 같다.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병을 얻어가며 열심히 일한 돈으로 다시 건강을 찾기위해 돈을 써야하는 뫼비우스의 띄에 올라서는 안타까움이 나는 <소비>에서 느껴진다. "자신을 위한 소비를 해라! 타인과 구별되기 위한 소비가 아니라!! 그것은 바로 남을 따라가기 위한 소비가 되는 것이다.!! -효상-"


  선거가 몇일전에 끝이났다. 그리고 그들이 원했던 것은 바로 대중 조작의 지렛대였을 것이다. 불안한 감정에 호소를 하고, 안하겠다는 말뿐인 약속을 하면서 실제로는 점진적으로 진행을 해가면서 국민을 교란시켰다. 그리고 다른 쪽을 돋보이게 하여서 정작 그 사실들은 숨겨왔다. 이제는 제발 이것이 안통했으면 한다. 무상급식, 4대강, 세종시, 용산참사, 강사의 교권, 검사 성접대, 천안함, 청계어항, 버스 중앙차로 위험성 등과 같은 군중의 관심이 이리저리 휘둘리기 때문에 어느것 하나 제대로 마무리 지어진것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선거기간 동안 한 수많은 공약들처럼 잊혀져간다. 대중이 두려워 해야할 것은 바로 잊혀짐이고, 나도 그것이 두렵다. 마치 역사가 반복되는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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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xAF.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0xAF.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읽기에 쉽지가 않은 편이다. 다양한 주제도 주제 일뿐만 아니라, 그의 머리속에서 복잡하게 엮겨있는 수많은 연결 고리들을 따라가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내 머리속에 그 실타래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난 어디있나?"라는 물음이 꼬리를 물고 떠 오르기 때문이다. 약간은 염세주의적인 그의 유럽여행 에세이가 바로 이 책 '여행의 기술'이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여행 책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다가 보면, 여행 보다는 예술, 문학적 그의 섬세한 감수성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에세이다.

  아마도, 책의 1/3정도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고, 2/3정도는 그와 여행을 함께한 예술인들일 것이다. 함께 했다고 하지만, 시대가 다르기에 알랭 드 보통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우리에게 그 발자국을 설명해주고 있다. 마치 추적을 하듯이 발자국 하나 하나에 대한 의미를 담아주기 때문에, 알랭 드 보통의 오감이 잠시 독자의 오감과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가져온다.


  책은 크게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이라는 연결고리로 되어 있고, 11명의 명사들과 함께한다. 그 중 내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부분은 '예술'이라는 고리다. 빈센트 반 고흐와 존 러스킨이 안내자의 역활로 등장하며, 알랭 드 보통은 그들의 뒤를 밟고 있다. 눈을 열어주는 예술과 아름다움을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앞서 다른 명사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생소한 부분이 많아서 와 닿지는 않았지만, 풍경과 예술의 고리에서는 지금까지 알랭 드 보통이 어떤 여행을 해왔는지를 한번에 깨닫게 해주었다.

"자연에 완전히 진실하라!" -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는가.
자연을 어떻게 속박하여 그림 속에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자연 가운데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무한하다!
따라서 화가는 자연 가운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
화가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자기가 그릴 수 있는 것을 좋아한다! -p.260-


  "오스카 와일드(영국문인)는 휘슬러(영국화가)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를 그리기 전에 프로방스에는 사이프러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p.264-"

  나는 알랭 드 보통이 설명한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배병우씨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생각났다. 사진 전체를 덮은 코발트 색과 왼쪽 윗부분에 있는 초승달 그리고 오른쪽 아래에는 사이프러스 나무의 끝부분만 바람에 휘어져있는 모습이였다. 지금 기억으로는 독일에서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었던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이 설명을 듣고서야, 고흐의 그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배병우씨의 사진이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는 위의 글처럼 풀려진다. 반 고흐의 이야기, 또 그보다 더 오래전에 여기를 들렀던 파스칼의 <팡세>의 말이 또다시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알랭 드 보통의 표현처럼, 매우 신랄한 경구가 기억나는 바람에 뜨거운 마음이 상당히 식어버렸다고 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일까? 그의 문학적 감수성이 나를 부럽게 만든다. 


  위는 러스킨의 데생에 대한 글이다. "아름다움을 느슨하게 관찰하는데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하여 그 구성 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좀 더 확고한 기억을 가지게 된다." 는 문구가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나도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세상에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느슨하게 관찰하는 그런 여행을 말이다. 그 전에, 내 작은 가슴을 두드려서 크게 넓히고 텅텅빈 머릿속에 꼬깃 꼬깃 메모를 해 놓아야겠다.


  때론 "왜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선 그 의미를 자꾸 미학적 기준에서 찾으려고 애쓴다. 아직은 러스킨의 '말 그림'이 나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심리적 기준을 조금씩 넓혀 보아야겠다.

'나는 보는 것이 그림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나는 학생들이 그림을 배우기 위하여 자연을 보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자연을 사랑하기 위여 그림을 그리라고 가르치겠습니다." - 러킨스 p.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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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xAE. 화가 vs 화가 (허나영)



  0xAE. 화가 vs 화가 (허나영)

  이 책은 위드 블로그(이하 위블)의 서평단으로 작성하는 마흔 세권째 책이다. 오래간만에 다시 위블의 책을 리뷰한다. 지난번에 서점에 들려서 업어온 책들 중에 이제 한권만 남아서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위블에서 읽고 싶은 책이 있어 신청을 하였다. 이 책 "화가 vs 화가"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로 전개되어 있다. 예전에 리뷰하였던 "아침 미술관(이명옥)"과 비교해보면, 아침 미술관은 하루에 한개씩의 그림을 감상하게끔 되어 있고, 각 앞의 작품과 다음 작품의 연결고리가 있지만 그렇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반면에 이 책은 인연이 있는 동시대의 작가들의 함께 다루어서 그림이나 예술작품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직접 살펴볼 수 있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책에는 22명의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이 11쌍의 작가들을 "우정","경쟁","사랑"이라는 세가지 특징으로 구분하여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각 한쌍(?)을 선택해보자!

1. 친구(우정), 변치않는 우정의 예술 동업자들 (구스타프 클림트 vs 에곤 쉴레)

  자! 우선 작품(?) 감상부터!!


  그림들이 세로로 되어 있어서 다소 보기가 불편 할 수도 있다. 위 두 그림은 클림트의 <다나에>와 에곤 쉴레의 <다나에>이다. 사실, 이 두명의 화가는 스승과 제자 관계이다. 에곤 쉴레는 클림트를 존경해서 그가 스케치 한것을 가지고 클림트를 찾아갔다. 그리고선 그가 그린것을 가지고 클림트에게서 독창적이고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에곤 쉴레는 자신의 작품과 클림트의 드로잉 하나와 교환하고자 하며, 소원이라며 요청을 한다. 이에 클림트는 이렇게 답한다. "왜 내 것과 바꾸려고 하는가? 자네가 나보다 더 잘 그리는데! 허허허" 

  이 둘은 이렇게 시작했고, 스승과 제자가 되었다. 작년에 클림트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렸었다. 그때 참석해서 클림트의 가장 유명한 <키스>와 그의 드로잉을 보았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때 그 수많은 여체의 드로잉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좀 이해가 갔다. 사실, 그 당시에는 좀 실망했었다. 습작이라는 드로잉이 너무 많이 왔기 때문이였는데, 사실 그 많은 습작을 통해서 클림트와 쉴레의 생각을 엿볼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땐, 정말 적나라한 자세의 여체들이 많아서 좀 놀랐는데 책의 일부를 인용하면 "그들은 여인의 몸 그리고 육체적인 쾌락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요구에 수많은 여인들도 기꺼이 응했고, 그로 인하여 많은 수의 드로잉 작품이 남아있다. 어쩌면 그들은 누구보다 여체를 깊은 곳까지 사랑했고, 여자들의 육체적인 사랑을 외면하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켰던 것일지도 모른다." -책 p.54.-

2. 라이벌(경쟁), 치열한 경쟁자들의 이름. (레오나르도 다 빈치 vs 미켈란젤로)


  첫번째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이고 두번째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이다. 사실, 이 둘은 서로 반대대는 성향을 가졌기에 서로 다른 곳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고, 둘이 마주친적은 한번 있었다. 바로! 피렌체에서이다. 피렌체 공화국의 중심 건물인 베키오 궁의 벽화 제작을 다 빈치에게 의뢰했고, 그 반대편의 벽화는 미켈란젤로에게 의뢰를 했다. 그래서 이 둘은 그 때 만나게 되었지만 서로가 너무 다름을 알게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과학자 혹은 연구자의 기질로 분석하고 해석해서 작품을 완성하는 반면에, 미켈란젤로는 단지 돌 속에 있는 형상을 끄집어 낼 뿐이라고 표현했으니, 이 둘은 정말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는 순간.. 이것이 정말 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돌로된 조각이 그림보다 더 부드러워보이는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들 보면 둘의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 둘은 무수히 많은 작품들을 시작했고, 무수히 많은 작품들을 미완으로 완성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 작품은 예술가로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 두명의 르네상스 대표적 예술가들은 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3대 르네상스 대표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이 셋중 두명의 내용만 다루었다는게 살짝 아쉬웠다. 내심, 라파엘로도 기대했는데 말이다. 

3. 연인(사랑), 영혼을 태우는 사랑의 포로들 (까미유 끌로레 vs 오귀스트 로댕)


  위의 작품은 까미유 끌로델의 <중년>이라는 작품이다. 늙은 노파가 성인남자를 데리고 가고 남자와 오른편에 무릅을 꿇은 여인의 손은 곧 떨어질것만 같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다시 표현하면, 로댕의 부인(로즈)가 로댕을 데리고 가고 오른편에 무릅을 끓고 곧 헤어질 것같이 묘사된 여인은 바로 자기 자신인 까미유 끌로델이다. 까미유 끌로델은 로댕의 조수이자 정부이자 동반자였다. 하지만, 로댕에게는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는 부인인 로즈가 있었고 결국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위는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그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부였던 까미유 끌로델은 정작 자신의 작품이 아닌 로댕의 이름으로된 작품이 대부분이 되어버렸고, 로댕의 아이마져 유산하자 그녀는 로댕을 떠났다. 하지만, 무슨 작품을 하던지 간에 여성작가 까미유 끌로델이기 이전에 로댕의 정부라는 딱지가 붙었고, 이윽고 그녀는 로댕이 자신의 작품을 훔쳐간다고 까지 생각하며, 세상과 담을 쌓고서 자신의 작품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부수기도 하고 해서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결국 그녀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그때, 정신병원에서 30년을 보내며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반면, 로댕은 자신이 죽을때 그의 정부였던 까미유 끌로델이 아닌 원래 부인인 로즈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다시 밝힌 셈이 되었다. 

  포스팅이 좀 길었지만, 이 책은 위와 같은 내용으로 22명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우정, 경쟁, 사랑 이 세가지의 이야기가 잘 어울러져 있어서 그들의 작품을 좀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으나 예전 포스팅에서도 인상파 화가들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나타내어서 이번에는 좀 다른 부류(?)의 예술가들을 선택했다. 이 책에는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그런 이야기가 담겨져있어서 예술 작품들을 좀더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물론, 예술품은 스스로에 대한 느낌이 우선이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분야에 대해서 조금 더 마음을 열수 있게끔 도와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설명중에 277쪽에 박래현씨의 작품 이름을 <작품 A>라고 되어 있는데, 이부분을 <회상 A>로 수정해야 한다. 책에 오타다. 그리고, 이전 글들 이명옥 <아침 미술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 황경신 <그림같은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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