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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x7B. 대한민국 IT사 100 (김중태)



  0x7B. 대한민국 IT사 100 (김중태)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위드블로그에 신청을하게끔 만든 그런 책이다. 또한 위드블로그의 서른세번째 책이기도 하다. 나름(?) IT에 몸담고 있다고 자부(?)하는 일인중의 한명으로써.. 음. 휴대폰 소프트웨어 개발업무면 IT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지 않은가? 하하하. 생활의 가장 큰 관심사였기 때문에 가장 많은 뉴스를 접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알고 있는 이야기나 혹은 옛 아련한 추억을 꺼내어도 IT관련된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사실, 어떤때는 서글프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무실의 내 책상에는 "행복한 개발자"라는 A4지로 만든 문구가 붙어있다. 생각해보니 지난번에도, 이와 관련된것을 블로그에 올린다고 했었던것 같은데... 이제서야 생각이 나는군. 이야기가 다른 곳을 빠지기 전에 아련한 옛추억을 꺼내어 보자.

  필자가 컴퓨터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쯤이다. 모델은 삼성 SPC-3100S 였다. 당시 10Mhz cpu와 640KB 메모리, 5.25" FDD 2개, 흑백 모니터를 가진 막강한(?) 이 컴퓨터를 부모님이 사주셨다. 이유는... 초등학교 4학년때인가? 컴퓨터 학원을 다녔었는데, 학원 대표로 대회도 나가고 해서 나름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컴퓨터에 빠진 나로써는 성적이 바닥을 기었었다. 결국에는 컴퓨터가 매장(?)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 후로 6년동안 컴퓨터를 보지도 못했었다. (경북 영주에는 당시에 학교 컴퓨터가 없었다.) 암튼, 그러다가 고등학교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에서 레포트 쓸때 컴퓨터를 할줄 알아야한다고 컴퓨터 학원에 한달 등록을했다. 거기서.. 나의 전공이 결정되어버렸다. 약 6년만에 모니터는 컬러로 바뀌어 있었고, 5.25" FDD대신에 HDD가 달려있었고, 삑삑 소리로 나던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었다. GW-Basic으로 "학교종이 땡땡땡" 연주 정도가 가능했었는데... 너무나도 빨리 발전해버린 컴퓨터에 나는 홀딱 빠져들었었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때 랩돌이(대학교 전산실에 상주하는 부류의 학생들) 중에 한명이 되어버렸다. 그러고서는 졸업후에도 이 컴퓨터라는 기계와 동거동락을 하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어떨때는 밉기도 어떨때는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혼자 오래 생활하다가 보면 외로움에 벽과 이야기를 하고, 사물과 이야기를 한다고 그런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옛날부터 컴퓨터하고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ㄸ ㅓ ㄹ ㅏ ㅇ ㅣ" 라고 그러기도 하지만.. 모 그렇다고 케빈 미트닉처럼 희대의 해커 실력을 갖춘 정도는 아니다. 그냥 먹고 살만큼 하고 있는 정도다. 

  자! 옛 추억은 다시 접고서 이제는 책이야기로 가보자!! 이 책에는 한국의 컴퓨터가 시작한 시점부터!, 인터넷이라는 획기적인 인류의 발명품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부터의 IT사에 굵직 굵직한 이야기들이 20가지씩 다섯가지 주제로 나뉘어져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역사", "8비트 키드와 하드웨어", "정보통신 독립의 꿈", "디지털 세대의 문화와 예술", "일상과 사람, 남은 이야기" 라는 주제로 되어 있다. 그 중 세가지를 선택했다!


  사실, 위의 내용은 전혀 몰랐었던 내용이였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인터넷 국가였다는 사실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었다. 전길남 박사님이 국가를 위해서 이렇게 훌륭한 일을 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또한 그의 제자들은 인터넷 기업협회 회장 허진호 박사, <바람의 나라>게임을 만든 넥슨의 김정주 대표, 네오위즈의 나성균 사장, 넥슨의 박진환 사장, 리니지의 송재경씨, 솔빛미디어의 박현제 대표, 삼보컴퓨터 정철 대표 등이다. 정말, 대한민국의 인터넷을 이끈 주역들의 스승이였다. 하지만 그의 정년퇴직때는 불러주는 곳도 없었고, 인터넷 20주년 행사도 치르지 못했다. 정작, 일본에서 인터넷을 가르쳐준 박사에 대한 보답으로 게이오 대학 부총장으로 모셔갔다. 왜! 이나라에서 이공계를 기피하는지 여실히 느낄수 있는 대목이였고, 또한 울분이 치미는 대목이기도 했다.


  청와대를 사칭해서 한때 대한민국에 희대의 해커가 나온것이 아닌가 할정도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고등학생 정도였던 나도 기억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요즘에도 이런 기사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위의 글에 나오는 김씨가 찾은 청와대의 비밀번호는 "12345" 였다. 참 대단한 곳이지 않는가? 실제로 한국에 실력있는 해커들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뉴스에 언급되는 해커들은 그냥 툴을 사용하는 정도이고, 위의 기사에 나오는 김씨는 컴맹을 갓 벗어난 정도였다고 보면된다. 패스워드 12345를 찾기위해서 그는 청와대와 관련있는 내용들을 모두 넣어보았을테니 말이다.


  붉은 악마는 한국인으로써 자부심을 느끼게 했던 몇 안되는(?) 사건들 중에 하나이다. 세계 해외 언론들도 최대의 관심이였다. 한번의 골에 4,000만이 함성을 쳤고, 그들은 모두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또한 조직적 응원은 항상 화두가 되었고, 그들의 함성은 또 다른 함성을 불러서 전국토에 메아리를 쳤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것이 PC통신이였고, 인터넷이였다. 또한 삼풍백화점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쳐서 피가 모자랄것이라는 소리에 수많은 인파가 가서 헌혈을 해서 그만 오셔도 된다고 글을 올릴정도였다. 이것이 인터넷과 언론을 따뜻한 방법으로 활용했을때 정말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방법보다는 헐뜯고, 신상조사로 캐내고, 스와핑에, 원조교제, 동반 자살의 암울한 방향으로 인터넷의 활용이 부각되고 있다. 몇일전에 일어났던, 키 작은 남성에 대해서 "루저"라고 편집없이 방송이 되어버린 "미수다"의 사건만 봐도 그렇다. 나의 경우는 루저에서 몇센치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한참 모자라는 호빗족(?)에 가깝다. 하지만, 한 여대생이 방송국에서 짜준 대본을 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신상에 대해서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본다. 정작 비난을 받아야 할곳은 "미수다"나 이를 방송한 방송국이지 않은가? 화살을 엉뚱한 약자에게 쏘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만 하다. 이런 모습을 위해서 전길남 박사님이 인터넷을 보급시켜주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대한민국 인터넷이 너무 차갑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지금이 바로 작은 불꽃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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